2009년 05월 12일
언론의 자유와 뒷말(Gossip)의 문화는 조화 가능한가?
1. 언론의 자유와 자유주의, 그리고 민주주의

  "연방의회는 국교를 정하거나 또는 자유로운 신교행위를 금지하는 법률을 제정할 수 없다. 또한 언론, 출판의 자유나 국민이 평화로이 집회할 수 있는 권리 및 불만사항의 교제를 위하여 정부에게 청원할 수 있는 권리를 제한하는 법률을 제정할 수 없다. "

 이는 미 연방의 수정헌법 제1조의 내용이다.  

 이른바 언론의 자유, 혹은 Freedom of Speech 는 자유주의의 핵심 명제이다.

번역어인 '언론'은 오해받을 때가 있는데, 이는 문자 그대로 말하고 논할 자유를 의미한다. 신문사 기자들의 자유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J.S. Mill은 On Freedom (<<자유론>>)에서 언론의 자유야말로 민주주의의 핵심 명제라고 주장한다. 민주주의와 자유주의를 잇는 논리적 가교는, "진리"(혹은 진실)에 관한 굳은 믿음이다. 진리는 승리한다는 대전제를 통해서, 역으로 진리가 아닐 수 있는 주장들이 끼칠 수 있는 해악도 인정될 수 있는 것이다. 여기에 또 다른 하나의 전제가 요구되는데, 이는 "우리는 진리를 알지 못한다"는 사실인정이다.

 후자는 20세기를 지나 더욱 강하게 인지되었다. 즉 우리는 진리를 알지 못한다는 사실이야말로, 20세기 이념전쟁의 폐허 속에서 돋은 유일한 실익이었다고도 볼 것이다. 그러나 전자에 대한 믿음은 갈 수록 희미해져가고 있다. 오바마가 선언하는바, "Skepticism"과의 투쟁이란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즉 민주주의에 대한 적(敵)으로서, 21세기가 마주하는 문제는 진리에 대한 회의주의를 해결하는데 있다는 것이다. 이는 윤리학적이고, 따라서 규범적이며, 무엇보다 법적인 문제로 우리 세대에게 대두되었다.

2. 언론의 자유는 제국주의적인가?

 한국 사회에서 언론의 자유는, 사실상 뿌리가 없는 사상이다. 한국 민주주의 위기의 이론적 난국은 아마도 '언론의 자유'의 정당화 논변이 부재하고 있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한국은 오랜 역사를 지니고, 이른바 문자옥(文字獄)이 성행했던 문화를 지니고 있다. 글로 인한 화(禍)를 입은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특히 정치에서 그러했다.

 본래 서유럽 세계에서 언론의 자유란, 종교의 자유로부터 비롯한다. 이는 민주주의의 이론적 구성을 커피 하우스와 같은 '공론장'의 발전과정에서 찾는 하버마스의 경우에도 인정한다.* 종교전쟁이라는 극단적인 이념 갈등을 1차적으로 겪은 이후에, 각자의 종교를 서로 인내하기로 한 결과가 바로, 사상의 자유, 종교의 자유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 것이 바로 언론의 자유의 자양이라는 논의이다.

 그러나 사실 언론의 자유의 뿌리가 진리에 대한 확신이고, 이는 다시 기독교적인 토양에서 비롯하기 때문에, 언론의 자유는 그 자체로 문제 있는 개념이다. 따라서 한편으로 언론의 자유는 서유럽 다수가 (거의) 모두 동의할 수 있었던 최소한의 기독교 사상이었던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서유럽 아닌 국가들에 대해서는, 오늘날 언론의 자유가 서구가 아닌 국가들에게 괴리하듯이, 제국주의적인 개념이라고도 할 수있는 것이다. 언론의 자유는 1차적인 사상적 갈등에 대한 당시 서구 권력 내의 합의지점이었다.

 이라크 전쟁을 비롯한 이슬람과 서구의 충돌은, 이러한 관점에서 바라보자면, 파괴적이고 부정적인 "문명의 충돌"로 파악되기 보다는, 오히려 구세기의 언론의 자유가 맞은 제 2차의 종교전쟁이라고 보는 편이 옳다. 적어도 세계는 21세기의 민주주의를 위해 내포하고 발전시켜야 할 새로운 개념의 언론의 자유를 구성해내야 하는, 문제에 직면한 것이다.

 바로 이러한 관점에서 한국 사회가 언론의 자유를 토착화 시키는 양태야말로, 이론적으로는 21세기 민주주의의 새로운 구성에 있어 중요한 참고가 될 가능성이 있다. 

3. 뒷말의 (한국) 문화는 무엇이며, 언론의 자유는 어떻게 새롭게 구성될 것인가?

 한국은 이른바 험담, 뒷말을 처벌하는 문화이다. 그렇기 때문에 뒷말이, 말이, 언론이, 곧 권력으로 파악되었다고 할 수도 있다. 언론의 자유를 인정하지 않는 것과, 언론을 권력으로 보는 것은, 동전의 양면과 같은 문제이다. 우리는 말이 처벌받을 만큼 유해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때문에, 말을 처벌하도록 허용하는 것이다. 이는 우리의 오랜 문화와 더불어, 남북 대립의 이념적 상처가 여전히 유효한 만큼, 우리 사회 전반에 걸쳐 유지되고 있다.

 이른바 '뒷말'이란, 경제학적인 설명을 유비하자면, 결국 말(언론)에 대한 처벌이 낳은 말의 암시장이다. 즉 말을 허용하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말이 가지는 유효한 힘은 여전하기 때문에 그 힘에 대한 욕구에서 발생하는 말의 논쟁장은 암시장으로서 존재하는 것이다. 그러나 사회의 공적인 부분에서 우리는 '틀릴 수 있는 말'을 말로 인정하지도 않을 뿐더러, 공적인 부분에서는 추방하고 처벌하는 것이다.

 말의 자유가 없이, 민주주의가 지속할 수 있을 것인가? 이는 언론의 자유를 민주주의에서 얼마나 구성적인 요소로, 즉 필수불가결하며 구조적으로 밀착한 요소로 보느냐에 달린 문제이다. 그러나 말할 자유야말로, 사상의 자유와 함께 '자유'의 핵심요소를 이룬다는 점에서, 적어도 이 문제를 최대한 융통성 있게 해결해내는 데 현재 한국 민주주의의 이론적 최전선이 펼쳐져 있음은 부정할 수 없다.

 결론은 아직 내리지 못하겠지만, 이러한 정리는 가능하겠다. 한국의 민주주의가 맞은 '언론의 자유' 문제는 단순히 민주주의 대 반민주주의의 문제가 아니라, 세계 민주주의의 문제이며 역사적으로 21세기 민주주의가 맞을 새로운 '자유' 개념의 핵심 명제와 연관되리라는 것이고, 또한 연관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by Meta-David | 2009/05/12 20:39 |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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