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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03월 27일
1. 브리트니 스피어스가 돈 버는 방법엔 문제가 없을까?
![]() 최근 구설수에 오른 미국의 팝 가수인 브리트니는 꽤나 거액을 앨범 수익으로 거둘 수 있었다. 이른바 앨범 '저작권'료를 차근차근 받았던 것이다. 앨범의 경우, 그녀가 돈을 버는 방법은 다음과 같았다. " i) 첫 번째 사람이 앨범을 산다. ii) 그 앨범 속의 일정 부분(퍼센트)를 땐다. iii) 그 일정 부분은 브리트니에게 주어진다. iv) 두 번째 사람이 산다. v) 다시 ii),iii)을 거친다. (브리트니는 이제 2명에게서 2개의 앨범으로부터 2 단위의 게런티를 챙겼다.) vi) 세 번째 사람이 산다. (그리고, 그리고, 그리고 .....) " 누구나 잘 알 수 있는 간단한 방식이다. 따라서 브리트니가 1000만장을 팔았다면 결국 그녀는 <1000만장 x 앨범 1장 당 게런티>의 금액을 먹어 치우게 되는 것이다. 자, 문제가 없어 보인다. 깔끔해 보인다. 그런데 저작권의 개념이 이렇게 산술적으로 곱셈 되도 괜찮은가? 도대체 우리가 아는 '저작권'이란 이런 것이었는가? 곰곰이 생각해 볼 기회를 가져 본다면, 이런 식의 저작권은 지나치게 승자독식(winner takes all)의 구조를 가지고 있다고 할 만하다. 말 그대로 이긴 놈(브리트니의 경우에는 팔아 치운 놈)이 다 먹는 구조이다. 이래도 괜찮은가? 원래 다 그런건가? "세상이 원래 그렇지" 하고 생각하시는가? 자, 본문은 이런 식의 저작권료 받아먹기가 논리적으로 부당하다고 생각한다. 이 글은 그런 생각을 간단하게나마 시작해보려는 시도이다. '제안'으로서 이 글은 보다 탄력성 있는 저작권료 수입 구조가 필요하다고 말하려 한다. 저작권에는 감춰져 있는 숨겨진 전제들이 많아도 너무 많다. 2. 중학생 아들은 법무법인 솔로몬과 80만원에 합의해야 하나? 그런데 언제부터 이것이 '죄'였던가? (동아일보, 네티즌 떨게 하는 ‘공포의 솔로몬’ 기사 읽기 2007년 11월 23일 게재) (네티즌들을 '후덜덜'하게 만들고 있는 '솔로몬'에 대한 블로거의 정리글 읽기) ![]() 한국 사회에서 저작권은 아직까지 안전하게 보호받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저작권에 대한 다양한 논의는 사실 '죄책감'을 불러 일으키기 일수다. "저작권과 관련해 너는 한 번도 범법한 적이 없냐?"고 묻는다면 참 곤란한 일이다. 우리는 종종 엄격한 저작권법을 어기는 일에 동참한다. 이는 심지어 자의 아니게, 혹은 피치 않게 이루어지기도 한다. 요점은 이것이다. 한국 사회에서 저작권은 광범위하게 침해되고 있다. 엄연한 사실이고, 해결해야 할 문제이다. 법무법인 솔로몬 등의 로펌들이 어린 아이들을 포함한 저작권 위반을 고소하고, 합의 명목으로 50~80만원을 요구하는 일이 늘고 있다. 이것은 정말 합법적인 '보이스 피싱'이다. 대중들 뿐 아니라 다수의 법학자들 역시 이런 로펌들을 비판하고 있다. 그러나 '저작권'의 진짜 정당성은 제대로 논의되지 못하고 있다. 저작권'료'를 물리고/ 혹은 받는 구조가 정당하느냐의 문제제기는 다른 이야기다. 우리는 잘 따져봐야 한다. 잘 따져서, 올바른 몫은 당연히 올바른 사람에게 돌려 줘야 하지 않겠는가? 만일 우리 사회가 땀방울 흘리는 가수들, 영화배우들, 극작가들 등등을 부당하게 '착취'하고 있다면 이는 슬픈 일이고 끔찍한 일이다. 우리는 해결해야 한다. 하지만 정말 정말 한국 사람들의 낮은 법 의식 만이 문제일까? 아, 한국인은 원래 '후진적'이기 때문에, 그러니까 '계몽'이 좀 덜 된 민족이기 때문에 이렇게 저작권을 못 지키는 것일까? 본문은 결코 그렇지만은 않다고 생각한다. 많은 사람들이 빌 게이츠와 브리트니의 '돈 버는 방식'이 무언가 이상하다고 문제제기하고 있다. 왜냐하면, 저작권은 원래 너무나 새롭게 생긴, 익숙할 수가 없는 새로운 (재산)'권리'이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는 아직 '저작권' 문제를 남겨 두고 있는 것이다. 법에는 물론 저작권이 제대로 명시되어 있다. 그러나 생각하건대, 그것은 한국 사회가 합의한 법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일례로 책에 대한 저작권을 들 수 있다. 많이 나아진 편이라고는 하지만, 요새도 대학가에서 '교재'를 자유롭게 복사하고 심지어 제본하는 일은 발에 밟힐 정도로 흔히 찾을 수 있다. 물론 '저작권'을 어긴다. 게다가 특히 "학자의 책을 팔아먹는다는 생각 자체가 말도 안 된다"는 의견도 종종 마주친다. 또 어떠한가? 우리는 "밥 도둑과 책 도둑은 잡지도 않는다"는 식의 속담도 많이들 접한다. 실제로 우리의 인식은 '저작권'에 익숙치 못하다. 오히려 저작권과는 반대되는 문화가 오랫동안 한국에는 내려왔다. 짧게 말해보건대, 저작권은 좀 더 자유롭게 논의되어야 한다. 감히 말하기에 다수의 사람들에게는 낯설 수 밖에 없는 저작권을 '계몽 군주' 혹은 '사회 엘리트'인양 법으로 딱 밖아 놓고서 사람들을 죄인으로 몰고 가는 현재의 법 당국에도 문제가 있다. 3. 저작권이 감추고 있는 위험한 함정 저작권은 낯선 권리일 수 밖에 없다. 브리트니의 예에서 보다시피, 저작권은 '상품'에 종속되어 있다. 그런데 정말 우리가 향유하는 저작권은 '상품'인가? 우리는 CD를 '소유'함으로써 그 '노래'를 '소유'하는 것인가? 내 브리트니 CD에 들어 있는 1번 트랙은 친구의 브리트니 CD에 들어 있는 1번 트랙과는 다른 '노래'인가? 아, 이건 아니라면- 그렇다면 '재생산'이 문제인건가? 그러니까 '공유'하는 게 문제인건가? 그럼 파티를 열었는데 30명이 같이 들을 수 있는 공간에서 내 CD 노래를 트는 건 괜찮은가? 아, '지속성'이 없으면 된다는 말도 있다. 그럼 내 친구에게 3번 빌려주면 안 되는 건가? 그럼 '공간성'이 문제인가? 그럼 10M 밖에 있는 내 친구한테 손으로 CD를 전해 주는 것과 5M 옆에 있는 내 룸메이트한테 CD를 파일로 보내주는 건 안 되는가? 이것도 아니라면 '동시성'이 문제인가? 그러니까 한 CD를 샀는데 2명 이상이 동시에 들으면 안 된다! 이런건가? 그렇다면 마음껏 CD를 MP3로 구운 다음 시간을 정해서 나눠 써도 아무런 문제가 없겠다. 그럼 왜 P2P를 공권력 마음대로 불법이라 칭하는건가? 다수의 불법 가능성으로 인해 소수의 합법 가능성을 마음껏 무시해도 괜찮은건가? 그러한 법집행은 올바른가? '책'의 경우는 더욱 가관이다. 본래 학술의 체계에 들어 있는 '책'은 참조되고 인용되기 마련이다. 그럼 도대체 '얼마 만큼' 배끼면 그건 '참조-인용'이고 얼마 만큼이면 '위조, 배낌'이라는 것인가?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이런 자질구레한 것들이 아니다. 본질적인 문제는 그것이 어떤 저작이건 그것은 본래 너무나도 다양하고 풍부한 '전통'이라는 기반 위에서 태어났다는 점에 있다. 브리트니의 섹시한 음악이나 비틀즈의 감동스런 명곡이나, 아니면 최근에 인기를 끌고 있는 현란한 테크토닉 춤이나, 다빈치의 모나리자나, 빌 게이츠의 윈도우즈마져도 미칠 듯히 노력한 우리네 인류의 '공통 저작'들의 기반 위에 서 있다. "기반 위에 서 있다"고만 할 수 있을까? 과연 그럴까? 생각하건대 거의 80% 이상의 저작권이란 사실상 공통의 소유라 보아야 한다. 이것은 우스운 일인데, 왜냐하면 상당 수의 '저작권'들은 말하자면 우리가 오래동안 알아 왔던 '찝뽕(제멋대로 선점하기)'의 방식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구도는 이런 식인 것이다. 우리가 너무 너무 기쁘게 즐기는 민속 음악이 있었다. 어느 날 이 민속 음악을 너무나 감명 깊게 들은 한 음악가가 있었다. 그는 요새 말로 해서 '샘플링'을 잘 해서, 착착. 자. 대단한 음악을 만들었다. 그 작가는 세련된 작곡 기술과 안목을 사용해서 엄청난 갑부가 되었다. 앨범은 날개 돋힌 듯이 팔렸고, 작곡가는 아름다운 신랑/신부와 만나 따뜻한 남국으로 가서 잘 살았다더라. 해피 앤드- ----------------------------------------------인가? 이 구도는 무언가 이상하다는 거다. 이 구도는 잘못되어있다. 어디가 잘못되어 있는 것일까? 그건 바로 그 작곡가의 성공이 "세련된 작곡 기술" 그리고 "안목" 이외에 "본래의 엄청나게 기쁜 민속 음악"으로부터도 탄생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 '해피 앤드'의 몇 십년 이후에 본래의 민속 음악을 즐기던 마을 사람들은 오히려 '게런티'를 내지 않으면 음악을 즐길 수 없었기 때문이다. 자, 이런 일은 너무 극단적인가? 그럴리가 없다고 생각하는가? 아니다. 실제로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다. '저작권'의 이름으로 말이다. 예컨대 농산물의 '종자'에 대한 거대 다국적 기업들의 '저작권' 주장이 그러하다. 이들은 세계에 퍼져있는 좋은 종자들을 모아, 개량한 다음 그 종자를 팔아먹는다. 우리네 농가들만 하더라도 이러한 '종자'를 많이들 사 쓴다. (물론 사 쓸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 이런 식의 '저작권'이란 실로 '찝뽕(선점)'의 방식이 아닐 수 없지 않은가? 이것은 정당하지 못하다. 이것은 지나치게 한 편에만 이익이 되는 구조이다. 그들의 '안목'과 그들의 뛰어난 '기술'은 당연히 인정해 주어야 한다. 그러나 그들이 받는 이익은 그들이 받아야 하는 정당한 몫 이상이다. 만일 이러한 부당한 몫을 인정하게 만드는 저작권법이 지속된다면, 우리 사회는 기회주의로 점철될 것이다. 모든 공유 자원들은 그것이 물질적인 것이건(물, 공기, 햇빛과 같이) 혹은 문화/정신적인 것이건(전통 음악, 학술, 요리법에까지!) 현재의 저작권법 하에서는 오래지 않아 '고갈'되어 버릴 대상에 속한다. 짧게 말해 이는 우리 주위의 모든 것들을 개인 소유물로 바꾸는 법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나 다름 없다. 우리는 앞으로 모든 행위 하나 하나에 '지불'을 하게 될 것이다. 10년이 흘러 이제 물을 사먹고 있듯이, 10년이 흐르면 이제 공기를 사 먹지 않겠는가. 10년이 지나면 어느 가정집 주방에서 만드는 된장찌개 만드는 법에 당신은 돈을 지불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물론 마케팅은 언제나 그렇듯이 이렇게 말할 것이다. "환상적이고 맛있는 된장찌개" 마찬가지로 현실의 "맑고 맑은 (혹은 귀족적인) 당신의 삼다수(에비앙)!"가 아니었던가! 4. "그래서 어떻게 하라고! (버럭)"의 질문에 임하는 자세. 이런 생각을 해 볼 필요가 있다. 이 사회에는 정말 뛰어난 사람도, 혹은 정말 평범하거나 재능이 없는 사람도 있다. 정말 다른 사람들에게 큰 도움이 되서 많은 돈을 벌어들이는 사람도, 또 그냥 그렇게 살아가거나 혹은 정말 '빌 붙어'서 평범하게- 혹은 가난하게 살아가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이 편차가 얼마나 크다고 생각하는가? 생각하건대 이러한 편차는 정말 별 볼일 없다. 가끔 '천재'가 태어나지만 그러한 천부적인 재능 하나 만으로 그 사람이 더 많은 돈을 가지고 풍족하게 살아가야 하는가? 그건 아니다. 많은 선천적 '장애우'가 있지만, 그러한 불행 때문에 그 사람은 더 가난하게 살아야만 하는가? 그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결국 우리가 생각하는 올바른 '부의 배분'은 대체 무엇인가? 그것은 아마도 누군가에게 얼마나 큰 '도움'이 되는가 일 것이다. 그것이 '시장 경제'의 합리적인 부분이다. 뛰어난 부분이다. '거래'가 이루어진다. "나는 당신이 딴 '사과'를 사겠어. 대가로 나의 이 '바나나'를 주겠어." 이렇게 시작한 '거래'가 이제는 '화폐'로 옮겨져 숨가쁘게 그렇지만 놀라울 정도로 효율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하지만 빌 게이츠의 몇 백 조(?)라는 미칠듯이 쌓인 돈더미들은 정말 그의 '사과'가 그렇게 그렇게 맛있어서 모든 사람이 그의 사과를 먹고 싶어서 이루어진 결과인가? 그렇지는 않다. 브리트니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그것은 방송을 타고, 기업 구조를 타고, '표준화'라는 이름의 제도들을 타고 일파만파로 확장되었다. 그렇게 만든 이유는 그렇게 하는 편이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누가 그 '효율'을 판단했는가? 다른 누구가 아니다. 우리 '모두'이다. "인류"라는 위대한 정신이다. 우리 '모두'가 빌 게이츠의 윈도우즈를 선택한 것이고, 또 브리트니의 음악을 띄워준 것이다. 시장의 역동성은 바람직하지만 시장의 역동성이 '기회주의'를 허락해서는 안 된다. 피할 수 없는 자잘한 '기회주의'들을 단속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미 세계의 '시장경제'에는 기회주의가 판을 치고 있는 듯 하다. 그리고 그 덕분에 치밀한 땀의 작업이나 성실함에는 제대로된 보상이 주어지지 않고 있다. '화폐 경제'가 숨기고 있는 곳, 그리고 그 대변인으로서 '저작권'이 숨기고 있는 부분이 바로 여기에 있다. 시장 경제는 석유나 철광석과 같은 천연 자원을 뽑아 내는 데에서 거품을 부풀렸다. 그 결과는 극히 소수가 소유한 엄청난 '부'(중동과 미국의 석유기업과, 미국의 석유기업이 사실상 발발시킨 이라크 전쟁을 보라)와 세계 전체가 신음하는 엄청난 환경 문제이다. 그리고 지금 '시장 경제'는 성실한 교환 가치 그 자체를 교묘하게 '뽑아 내어' 또 다른 새로운 거품을 부풀리려고 하고 있다. 아니 이미 상당히 거품은 부풀려졌고, 또 다른 식으로 '부'는 집중되고 인류 전체는 피해를 볼 태세이다. 이대로라면 결국 또 다른 '파국'이 우리를 맞을 것이다. ******************** 현실적인 문제로 돌아와서. 이러한 저작권의 수익은 다른 방식의 기준들을 분명히 필요로 한다는 점을 짚고 글을 마치려 한다. 최근 인터넷 공간에서 나오는 '상업적 이용'에 대한 제외 기준 등은 매우 참신한 방법의 하나이다. 인터넷과 같은 다자 대 다자 사이의 직접적이고 동시적인 접촉이 이루어지는 기술의 발전 역시 고무적이다. 이러한 발전을 이용해서, 이전에 누군가를 보지 않고 다만 '거래'가 이루어지던 익명의 화폐경제는 전환점을 맞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결론은 우리에게 많은 '대안'들이 열려 있고, 우리는 '고민'을 할 수 있고, 무엇보다 우리는 '고민'을 해 보아야 한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우리의 공동체가 오직 승자 독식의, 기회주의의 전당이 되지 않도록 막아야 한다. 지금 '저작권'은 부당한 몫을 소수에게만 몰아 주고 있다. 덕분에 예술만 하더라도 더욱 갈급해 진 이들은 거대 앤터테인먼트 기획사 소속의 아이돌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듣고 싶지만 '들려줄 기회' 조차도 얻지 못하는 수 많은 실력 있는 음악가들이다. 그리고 기억하라. 갈급해진 것은 바로 우리 모두 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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